안녕하세요 '장사고수와 만나는 곳' 창톡 노승욱 대표입니다.
저는 2011년 매경이코노미 기자가 된 뒤, 지금까지 10년 넘게 자영업 분야를 취재해왔습니다. 한국기자협회에 등록된 기자가 2만 명이 넘는다고 하지만, 자영업을 전문적으로 다룬 기자는 한 손에 꼽을 정도로 거의 없었습니다. 광고주도 없고 드센 소상공인 분들을 현장에서 상대해야 하는 자영업 시장은 기자들 사이에서 비인기 분야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시장을 놓을 수 없었습니다. 딱 하나, ‘다점포’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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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점포율이 보여주는 프랜차이즈의 진짜 가치
2015년부터 저는 프랜차이즈별 다점포율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50개 프랜차이즈 브랜드에 일일이 연락해 다점포 현황을 요청했죠. 놀랍게도 많은 브랜드 본사조차 “다점포가 뭐냐”고 되묻더군요. 그래서 제가 하나하나 설명하면서 요청했습니다. 한 점포를 해보고 두 개, 세 개까지 확장하는 점주들이 있다면, 그건 브랜드의 만족도와 수익성이 높다는 증거니까, 그 자료는 당신네 브랜드의 자랑거리가 될 수 있다고요.
자료를 모으다 보니 흥미로운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브랜드 순위가 높을수록 다점포율도 높았습니다. 예를 들어 CU의 다점포율은 37%에 달했는데, 이는 점주 만족도가 높고 수익성이 뛰어나다는 의미였습니다. 결국, 브랜드 파워와 다점포율은 비례한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다점포율 = 프랜차이즈의 ‘선행지표’ 임을 입증하다
조사 결과, 점포 수가 늘어나는 것보다 중요한 건 ‘점포당 매출’이었습니다. 2015년부터 편의점 수는 매년 3,000개씩 증가했지만, 다점포율은 그 해를 정점으로 꺾이기 시작했습니다. 포화 시장에서 점포당 수익성이 떨어지자, 투자형 점주들은 빠르게 철수했고, 생계형 점주들이 그 빈자리를 채우면서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분들과 함께 제가 조사한 6년치 다점포율과 점포당 매출 데이터를 회귀 분석했습니다. 결과는 명확했습니다. 다점포율은 점포당 매출에 영향을 주는 유의미한 선행지표이자 동행지표로 나타났습니다. 반면 단순한 가맹점 수는 매출 변동을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뜨는 브랜드는 ‘다점포 점주’가 먼저 알아본다
저는 이 통찰을 바탕으로 『프랜차이즈 트렌드』라는 책을 썼습니다. 부제는 ‘뜨고 지는 아이템, 투자형 점주는 알고 있다’라고 지었죠. 여러 개 매장을 운영하는 다점포 점주들은 시장을 잘 읽습니다. 어떤 브랜드가 뜨고 있는지, 언제 빠져나와야 하는지를 빠르게 감지합니다.
인터뷰를 통해 이 분들의 공통점도 발견했습니다.
첫째, 수익률. 잘 되는 매장을 열면 30~50% 수익이 나는데, 부동산 임대소득 2~3%보다 훨씬 높은 수익입니다.
둘째, 고용 창출. 뽑은 직원들을 성공시키고 싶은 마음이 크고, 이를 위해 체계적인 HR(인사 관리) 시스템을 갖추죠.
셋째, 창업 실험. 새로운 상권이나 아이템을 시험해보고 싶은 욕구가 강합니다. 어떤 분은 자신을 “창업 중독자”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다점포 점주 생태계 고도화된 미국
제가 이 다점포 개념을 처음 발견한 줄 알았지만, 미국은 저보다 10년 전부터 이걸 연구해왔더군요. 1960년대에는 한국처럼 한 가맹점만 운영하는 생계형 점주가 주류였지만, 80년대부터는 동일 브랜드 다점포 운영, 90년대 이후에는 다브랜드 다점포 운영이 확산되었습니다.
특히 놀라웠던 건 다점포 점주를 위한 컨퍼런스가 미국에서는 매년 열린다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한때 미국의 메가 프랜차이지 1위였던 'NPC 인터내셔널'은 피자헛 937개, 웬디스 194개를 운영했는데, 코로나로 부도난 후에도 플린 레스토랑 그룹(FRG)이라는 다른 메가 프랜차이지가 인수하면서 고용이 승계됐습니다. 이렇게 다점포 점주들의 기업화를 거치며 미국은 외식업에서도 ‘고용 안정성’과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게 됐습니다.

‘다점포 인프라’ 부족한 우리나라, 변화가 시작됐다
코로나 시기, 저는 절망했습니다. 미국과 일본은 다점포 점주에게 매장 수에 비례해 지원금을 줬지만, 한국은 1개 점포만 지원했습니다. 저를 비롯해 이를 지적하는 기사가 쏟아지자 겨우 4개까지 늘었지만 여전히 불충분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점주들이 '명의 쪼개기'를 시도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아직 다점포 확장에 필요한 제도적 인프라가 부족합니다.
하지만 최근 변화가 감지됩니다. 자영업자 비율이 불과 5~6년 전만 해도 25%가 넘었는데, 지금은 20% 이하로 떨어졌습니다. 그 와중에 선방한 건 바로 다점포 점주들이었습니다. 생계형 점주들이 무너지는 속도가 더 빨랐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MZ세대가 자영업 시장의 20%를 차지하게 됐습니다. 젊은 창업자들이 시장에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세대교체와 함께, 다점포 기반의 자영업 생태계도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공실을 채워 상권을 살리고 고용을 창출하는 ‘다점포 점주’
지금은 오히려 건물주가 을이 되는 시대입니다. 월세를 꾸준히 내고, 상가에 집객할 수 있는 브랜드 빌더가 필요해졌기 때문입니다. 점주들 중에서는 월세를 절반으로 깎거나 렌트 프리를 1년이나 받는 사례도 등장했습니다. 이처럼 공실을 채우고 지역 상권을 회복시킬 수 있는 주체는 다점포 점주들입니다.
저는 2020년에 “생계형 점주는 보호하고, 기업가형 점주는 육성하자”는 기사를 썼고, 이후 기사대로 됐습니다. 소진공 이사장이 똑같은 내용의 정책을 발표한 것입니다. 이제는 자영업 시장도 ‘투트랙(two-track) 정책’이 필요합니다. 생계형은 보호하고, 기업가형은 성장할 수 있게 도와야 합니다.

다주택자는 돈만 있어도 되지만, 다점포 점주는 '고객 만족 역량' 있어야
혹자는 다점포 점주에 대해 정서적인 거부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다주택자처럼, 특정 소수가 너무 많은 자원을 독점하는 것 아니냐 우려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집과 상가는 다릅니다. 다주택자는 누구나 자본만 있으면 될 수 있지만, 다점포 점주는 고객을 만족시키는 장사 역량이 있어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선 필연적으로 고용 창출과 직원 교육이 이뤄지고, 자영업의 전문화, 고도화가 수반됩니다. 점주의 역량 강화는 건물주, 프랜차이즈 본사와 대등한 관계를 설정해 자영업 생태계의 건전한 발전을 도모하게 됩니다.
앞으로는 다점포 점주와 메가 프랜차이지를 중심으로 자영업 시장이 선진화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생태계를 위해, 투자 펀드, 정책 금융, 고용 시스템 등 다양한 제도들이 함께 설계되어야 합니다. 그게 제가 미국에서, 또 우리나라에서 직접 보고 들은 자영업의 선진화 과정입니다. 감사합니다!
* 하단에 다점포율과 점포당 매출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소논문 무료 다운로드 링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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