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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무이자의 탈을 쓴 사채, 주류대출의 실체
노승욱

안녕하세요 창톡 노승욱 대표입니다. 최근 방송인 정준하 씨가 주류대출(법적 용어는 '대여금')을 받았다가 지연이자 때문에 아파트가 경매로 넘어가게 됐다는 소식이 알려지며, 자영업 시장에서 주류대출이 초래하는 문제점이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술을 파는 음식점 사장님이라면 한 번쯤 주류대출에 대해 들어보셨을텐데요.

저는 2017년에 주류대출을 해준 도매상과 받은 자영업자, 주류 제조사, 국세청 사무관, 변호사 등을 인터뷰해서 이 문제를 취재, 보도한 바 있습니다.

오늘은 주류대출이 무엇이 왜 문제고, 자영업자 분들이 어떤 점을 주의해야 하는지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주류대출은 자영업자가 창업 과정에서 부족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주류 도매상으로부터 받는 일종의 대출입니다. 도매상은 대부업체가 아니기에 여신 행위를 할 수 없기에 표면적으로는 무이자 대여금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자영업자가 해당 도매상의 술만 받도록 하는 '독점 납품 약정 조건'이 수반되고, 이 과정에서 술값이 시세보다 비싸질 수 있습니다.



무이자 대출? 실은 독점 납품 술값에 이자 반영되는 '리베이트'


제가 취재했던 2017년에는 생맥주 20리터 한 통의 시장 평균 납품가가 4만원이었는데요. 주류대출을 받은 경우 한 통당 1000~2000원, 많게는 5000원이나 더 비싸졌다고 합니다. 술값이 얼마나 비싸지는가는, 도매상과 자영업자의 협상력에 달렸기에 상황은 제각각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주류대출이 시행되는 과정에서 '이것은 무이자 대출이 아니고, 이자에 해당하는 술값 인상이 수반될 수 있다'고 명확히 고지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점입니다.

특히, 원금을 다 상환하고도 주류 독점 납품 계약 때문에 납품처를 바꾸지 못해 계속 비싼 가격에 술을 납품 받아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장사가 안돼 가게가 망하면, 대출 잔금은 물론, 납품 기간을 채우지 못한 위약금, 지연이자 등을 물어야 하고, 못 갚으면 가압류, 소송에 휘말릴 수 있습니다.



대출을 받았으면 갚아야 하고 못 갚으면 불이익을 당하는 것은 물론 당연합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무이자'라는 사실상 허위 광고를 하고, 술값에 이자를 녹여 정확한 이자율과 상환 조건을 고지하지 않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금융 당국의 지도 감독을 받는 일반 금융기관들은 금융소비자에게 투자 상품의 위험성을 충분히 고지하지 않은 '불완전 판매'를 하면 손해 배상을 하거나 영업 제재를 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주류대출은 금융기관이 아닌, 사인 간의 거래여서 금융 당국의 감시에서 벗어난 사각지대에 있고, 금융소비자로서 보호를 받기 힘든 사금융이자 지하경제에 해당합니다. "술값에 반영된 이자가 이렇게 비싼 줄 몰랐다"라고 나중에 후회해도 구제 받기가 어렵습니다.


부실 떠안는 도매상도 울상.. 주류제조사, 프랜차이즈 본사만 웃는다


주류대출을 시행하는 주체는 주류도매상입니다만, 도매상들도 웃지는 못합니다. 자영업자가 망하면 대출 부실이 발생, 소송을 해서 자산을 압류해도 대여금을 다 회수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갈수록 자영업 경기가 악화되며 부실은 빠르게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에도 도매상들이 주류대출을 하는 배경에는, 거래선 확보를 위한 치열한 영업 경쟁이 있습니다. 냉장고, 쇼케이스 등은 기본이고, 주류대출까지 해줘야 주류 납품 계약을 따낼 수 있기 때문이죠.

이런 구조에서 이익을 가장 많이 얻는 주체는 바로 프랜차이즈 본사와 주류제조사입니다. 이들은 도매상이 부실을 떠안으며 영업하는 동안, 손쉽게 가맹점과 주류 판매를 늘려 이익을 취합니다. 그래서 일부 프랜차이즈는 지금도 '무이자 주류대출'을 내걸어 가맹점주를 모집하고 있습니다. 주류제조사 또한 자사와 관계가 좋은 도매상에 주류 공급대금 납입을 늦춰주는 방식으로 주류대출 자금 공급책 역할, 즉 '쩐주' 역할을 했습니다.


주류대출, 하지도 받지도 말아야


주류대출은 특정 업체의 술을 독점 납품 받는 조건으로 건네는 리베이트입니다. 이통사 대리점들이 '공짜폰'을 미끼로 번호이동 영업을 하고, 대신 비싼 부가서비스 가입과 2~3년 의무 이용 '노예 계약' 약정을 하는 것과 비슷하죠. 그러나 잘못된 창업의 폐해는 휴대폰 노예 계약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심각합니다.

때문에 국세청도 주류 대여금을 불법 리베이트로 포함시키고 쌍벌제를 도입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석연찮은 이유로 주류고시 개정안 시행을 불과 3일 앞두고 백지화 됐습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경기도지사 시절 주류대출 10가지 주의사항 권고문을 배포, 주류대출의 위험성을 경고한 바 있습니다.




주류대출은 창업 비용이 부족한 자영업자 분들에겐 가뭄의 단비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장사를 잘 하는 분이라면 주류대출을 잘 활용해서 자금 조달에 성공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영업 폐업률이 갈수록 높아지는 상황에서, 장기적으로는 자영업자와 소비자, 중소 도매상까지 모두가 피해를 입게 될 수 있습니다. 이제라도 정부가 주류고시 개정안 원안대로 주류 대여금을 불법 리베이트로 포함시켜, 이를 근절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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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톡 - 노승욱 고수
노승욱 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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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마케팅, 기타
경력
14년
지역
서울 강남구
“저도 어머니가 40년 넘게 순대국집 하고 계시는 소상공인의 아들입니다. 외롭고 힘든 소상공인의 장사 고민을 풀어드리고자 창톡을 설립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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