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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장사고수와 만나는 곳, 창톡 노승욱 대표입니다.
최근 슈카월드와 글로우서울이 쏘아올린 '빵값 논란'이 뜨겁습니다. 우리나라의 비싼 빵값 문제를 바로 잡겠다며 성수동에 'ETF베이커리'라는 팝업스토어 빵집을 오픈하고, 소금빵을 990원에 팔고 있는데요. 소상공인들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가격'이라며, 마치 빵집들이 폭리를 취하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을 주는 데 대한 우려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저는 이 논란을 보며 한 가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빵집의 빵값이 불필요하게 비싸다면, 똑같은 조건에서 저렴한 빵을 파는 가게를 운영해 보여야 하는데, 왜 성수동 핫플에서 팝업스토어를 운영하는 거지?'
결국 슈카월드와 글로우서울은 빵값이 아닌, 다른 노림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지난해 이맘때쯤 더본코리아가 넷플릭스 '흑백요리사'의 대히트로 상장(IPO)에 성공했듯, 내년 상장을 목표로 하고 있는 글로우서울의 사전 정지작업으로 보입니다.
ETF베이커리의 문제(1) 출발선이 다르다
먼저 슈카월드와 글로우서울이 운영중인 ETF베이커리의 문제를 세 가지 제기하고자 합니다.
첫째, ETF베이커리는 일반 빵집에서 만드는 빵과 출발선이 다릅니다.
ETF베이커리는 글로우서울이 국내 최고 핫플레이스인 성수동에서 팝업스토어를 열고, 360만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버 슈카월드가 홍보를 담당하는 초대형 프로젝트입니다.
성수동에서 팝업스토어를 운영하려면 주당 최소 350만원(월 1400만원)의 임대료를 내야 한다고 합니다. 월세 200~300만원짜리 일반 상권에서 빵집을 차렸다면, 빵값을 더 낮출 수 있었을텐데 말이죠. 재료에서 뺐다는 가격 거품을 월세로 옮겨놓은 이상한 모양새입니다.
또한 인기 유튜버 채널에 광고를 하려면 구독자 100만명 이하도 700만원 이상이 시세입니다. 슈카월드 정도 채널에 홍보하려면 영상 하나에 적어도 3000~5000만원 이상은 내야 할 겁니다. 여기에 수십개의 언론사에서 ETF베이커리 소식을 전하며 간접 홍보를 해주고 있습니다.
이 정도 마케팅을 하려면 적어도 수십억원은 들여야 가능하지 않을까요. 소상공인이 운영하는 일반 빵집으로선 흉내는커녕, 상상도 하기 힘든 프로젝트입니다.
마케팅이 중요한 이유는, 박리다매에서 '다매(多賣)'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슈카월드와 글로우서울은 '박리(薄利)'여서, 즉 싸게 팔아서 '다매'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 반대입니다. 슈카월드와 글로우서울은 애초에 '다매'를 할 수 있으니 '박리'에 팔 수 있는 겁니다.
일반 빵집과는 전혀 다른 스케일의 자원을 동원해서 대기업 방식으로 빵을 팔면서, 소상공인이 운영하는 빵집의 빵값을 겨냥하는 것은 언어도단입니다.
ETF베이커리의 문제(2) 목표점이 다르다
수주~수개월만 짧게 운영하는 팝업스토어가 '100m 달리기'라면, 보통 2년 이상 장기 임대하는 일반 상점은 '장거리 달리기'에 가깝습니다. 목표점이 다르니 애초에 운영 목적과 방식이 전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팝업스토어의 운영 목적은 수익성보다는 '브랜드 홍보'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인력, 자본 등 자원을 총동원하여 단기간에 브랜드를 알리는 게 목표입니다. 때문에 지속가능성, 경쟁자의 모방 우려는 애초에 관심이 없습니다. 오히려 논란을 일으켜서라도 화제가 되는 게 목적 달성에 유리할 수 있습니다.
반면, 일반 상점은 수익성과 지속가능성이 최우선입니다. 소상공인은 구매력(buying power)이 약하니 가격 결정권도 제한적입니다. 산지와 직거래를 해서 원가를 절감하는 것도 어느 정도 대량 구매가 가능해야 시도해볼 수 있는 방법입니다.
설령 노동력을 갈아넣어서 박리다매가 가능하다 해도 안심할 수 없습니다. 1900원 생맥주, 초저가한우 프랜차이즈 사례에서 보듯, 한 가게가 잘 되면 우후죽순 비슷한 카피캣이 따라 하니 가격 경쟁력도 금세 상쇄됩니다. OECD 국가 중 자영업 포화도가 최상위권인, 정글 같은 시장 환경이 낳은 비극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빵을 무조건 싸게 팔라고 하는 건, 장거리 마라톤을 100m 달리기처럼 전력질주하라고 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장사는 100m만 달리고 쉴 수 있는 단거리 종목이 아닙니다.
빵보다 원가가 더 저렴한 커피도 한 잔 가격이 최근 1500원에서 1700원으로 올랐습니다. 커피는 그나마 하루에도 여러 잔 마시는, '다매'가 가능한 아이템인데도 이럴 진대, 주식(主食)도 아닌 빵을 커피보다 싸게 팔아서 다매를 하라는 건 역시나 언어도단입니다.
ETF베이커리의 문제(3) 문제는 빵값이 아니다
ETF베이커리의 가장 큰 문제는 세 번째입니다.
슈카월드와 글로우서울이 '비싼 빵값' 바로 잡기를 ETF베이커리의 명분으로 내세웠는데요. 사실 비싼 빵값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습니다. 바로 '맛'입니다.
공정위가 지난해 국립공주대학교에 의뢰해 만든 보고서에 따르면(아래 첨부파일 무료 다운로드 가능), 소비자들이 빵을 구매하는 목적은 일반 빵집은 '디저트용', 그리고 편의점이나 대형마트에서 파는 양산빵은 '식사 대용'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디저트용으로 사먹는 일반 빵집을 소비자들이 선택하는 요소는 맛이 65.5%, 가격은 21.6%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단, 양산빵은 가격이 선택 요소라고 응답한 비율이 45%로 맛이라고 응답한 44.1%보다 유일하게 높았습니다.
즉, 빵값이 비싸다는 불만은 일반 빵집보다는, 대기업이 공장에서 대량 생산해서 편의점과 대형마트 등에서 파는 양산빵에 더 해당하는 문제인 것입니다.
따라서, 비싼 빵값을 바로 잡겠다는 슈카월드와 글로우서울의 목적을 달성하려면, ETF베이커리를 통해 일반 빵집의 디저트용빵과 경쟁하는 대신, 제빵 공장과 손잡고 양산빵을 만들어 대기업과 경쟁하는 것이 맞습니다. 한 마디로, 대기업의 양산빵이 가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소상공인이 운영하는 일반 빵집을 겨냥하는, 이율배반인 것입니다.
사실 런던베이글뮤지엄, 카페 노티드 등 유명 브랜드 빵집이 비싼 가격에도 장사가 잘 되는 사례들을 봐도, 소비자들의 빵 구매 요소가 가격보다 맛이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전술했듯, 세계적으로 자영업이 포화된 국내 시장에서, 소상공인에게 가격 경쟁보다는 품질 경쟁을 유도하는 것이 더 바람직합니다.
공정위 보고서도 명확히 이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가격이 저렴한 베이커리의 경우 너무 저렴한 가격으로 원재료의 질에 대한 선입견이 있음. 이로 인해 신뢰도가 낮아져 수요가 적음. (중략) 앞으로 빵 시장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세분화와 전문화가 지속적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예상함."
이런 점에 비춰볼 때, 슈카월드와 글로우서울의 뜬금 없는 빵값 논란은 소상공인과는 출발선도, 목표점도 다르고, 국내 빵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방향성(가격보다 맛)과도 맞지 않습니다.
글로우서울의 ETF베이커리에서 더본코리아의 흑백요리사가 오버랩 된다
그렇다면 ETF베이커리의 숨은 노림수는 무엇이었을까요.
제 생각엔 글로우서울이 내년 상장을 앞두고 호재가 필요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지난해 이맘때쯤 더본코리아가 흑백요리사의 대히트로 코스피에 무사 입성했던 것처럼 말이죠. 마침 이번 9월에 글로우서울이 상장 예비심사청구에 들어갈 예정이라는 기사도 보도된 바 있더군요.
상장에 성공하기 위해 이벤트를 하는 것은 글로우서울의 자율적인 경영 판단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소상공인이 마치 폭리를 취하는 것처럼, 어떤 타도의 대상으로 이용당하는 것 같아 불편합니다. 저도 한때 프레즐 빵집을 운영해봐서 더욱 그렇습니다.
누군가에겐 망해도 그만인 팝업스토어지만, 누군가에겐 생업이 달린, 삶의 마지막 동앗줄입니다.
정말 빵집의 빵값을 바로 잡고 싶었다면..
ETF베이커리 프로젝트가 정말 진정성이 있었다면, 헤르만 헤세의 사례를 벤치마킹하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헤르만 헤세는 '데미안'이란 작품을 자신의 유명세가 아닌, 작품성만으로 평가받기 위해 '에밀 싱클레어'라는 가명으로 책을 출판했습니다. 그럼에도 평론가들은 헤세 특유의 문체와 뛰어난 작품성을 알아보고 헤세의 작품임을 밝혀냈죠.
슈카월드와 글로우서울도 유명세와 거대 자본에 기대지 않고, 소상공인과 같은 출발선에서 시작해 같은 목표점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줬더라면, 정말 의미있는 프로젝트가 되지 않았을까요. 상장 예비심사청구에 맞춰서 팝업스토어로 어그로 끈다는 의혹을 살 일도 없었을 테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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